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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김계춘님의 칼럼 - 아 나의 어머니~~
글쓴이 : 햇살 날짜 : 2012-05-19 (토) 15:59 조회 : 584


"어디에 계시는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서두(序頭)다.

필자의 어머니는 올해 여든여덟이다. 농사일과 바느질로 6남매를 거의 홀로 키우신 어머니는 무척이나 건강한 체질이셨다. 더욱이 농사일을 그만두신 이후엔 수의(壽衣)를 만드는 일에 전념해 '황혼의 덫'이라는 치매와는 무관해 보였다. 그것은 동네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터였다. 하지만 팔순이 되던 해 치매(癡매) 기운이 보이더니 5년 동안의 투병생활을 거쳐 지금은 한림읍 어느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시다.

원래 자그마하신 분이라 휠 등도 없을 것 같았는데 유수(流水)와 같은 세월 탓인지 영락없이 꾸부정한 노인네가 되셨다. 찾아가 뵐 때마다 천근 만근으로 내리 눌렀을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어디에다 묻어 감췄는지 어머니는 마냥 '천사'같은 표정이다. 그러나 솜털같이 가볍기만 한 몸뚱아리가 찡하게 마음 한 구석을 울리며 현실을 감지케 한다.

돌이켜 보면 당신의 삶에서 남을 이겨본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상당히 완고하고 엄격했던 분을 남편으로 두셨기에 평생(平生)을 숨죽이고 사셨다.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벗삼아 늘어놓던 푸념도 아버님께 곧잘 들키기 일쑤였다. 그때 계면쩍어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필자에게 아직도 '묘한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다.

당신은 자식들마저 제대로 이겨보질 못했다. 성격이 불같았던 아버님 때문에 혹시 주눅이라도 들까봐 자식들 다독이기에만 급급하셨다. 없는 살림도, 철없던 자식들의 불평·불만도 모두 당신 몫이었다. 먹물보다도 더 검게 타들어 갔을 마음 고생을 과연 어떻게 감당(堪當)하고 사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래도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 편이셨다. 속으론 투덜대면서도 35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님을 늘 그리워하셨다. "세 아들 중에 아버지 따라갈 사람 하나도 없다"란 소리는 우리 형제들이 잊을만 하면 종종 듣던 말이다.

치매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이제 자식조차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어머니. 사랑하는 사람들도, 당신의 이름도 잊어버린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신다. 요양원을 찾아 얼굴을 맞대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눈만 꿈뻑인다. 간혹 내뱉으는 말 또한 대상이 없는 혼잣말이다. 그런 무망무애(無望無哀)의 모습이 한편으론 차라리 속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달래느라 소리 지르며 싸우던, 서로 대화라도 통했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는 이렇게 계속된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오늘은 어버이날. 연례 행사처럼 해마다 찾아오는 날이건만 올해는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 착잡하기까지 하다. 아마 나 자신도 나이가 들어서인 듯싶다. 내년 이맘 때도 어머님이 몸이나마 건강하셔서 이같은 편지를 다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목 놓아 부르고 싶은 '아, 나의 어머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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